체질침 치험례

권도원, 1963년 대한한의학회지

 

제1례
  금년봄 어느날 내가 존경하는 모박사댁을 방문한 일이 있다. 그때 그 박사부인께서는 십수년 동안을 앓아오는 자기의 腎臟炎에 대하여 문의하였다. 증세는 全身이 붓고 소변이 不利하며 頭痛이 심하고 머리와 팔이 남의 살처럼 저리고 변비가 심하다는 것이다. 나는 執脈과 몇가지의 問診으로 病根이 少陽人의 胃熱에 있는 것을 알고 침으로 상양, 여태, 삼리, 위중을 迎하여 주었다.

 

  그후 부인은 병원으로 찾어와 "내 병이 낫을 수 있읍니까, 내가 이 병때문에 종합병원에 입원도 수차했고 또 기타 여러 방법으로 치료를 많이 받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집에도 의사가 있읍니다만 의사들은 이구동성으로 내 병은 죽어야 낫는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일 침을 맞은 직후에 머리속과 기분이 상쾌하여저서 아마 일시적인 기분이겠지 생각하였던 것이 그후 두통이 아주 없어지고 소변이 便하며 부기도 빠저 몸이 많이 가벼워저서 신기하게 생각이 되어 다시 왔읍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그러십니까, 그러면 다시 한번 치료해 보시지요"하고 그대로의 鍼方에다 임읍, 함곡을 隨하기를 더하여 치료하여 주었다.

 

  며칠후 그분은 다시 와서 "이제는 아무리 시험해 보아도 그 오랜 내 병이 아마 다 낫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될수가 있읍니까"라고 함으로 "글세요 낫고 안낫은 것은 자신이 더 잘 아시지 않겠읍니가, 두번만 더 맞어 보세요" 하였드니 "침 두번 더 맞는 거야 무어 문제가 되겠읍니가만 하두 이상하게 생각이 돼서 내가 이야기 했드니 우리 주인께서도 웃기만 하고 모두 정신없는 말로 듣는것 같아서 누구에게 말도 못합니다. ..."

 

  그후 같은 방법으로 두번 더 치료하고 그 신장염은 완치되었다.


제2례
  그후 몇달이 지나 여름 한창 더운때 하루는 전화가 걸려와서 받었더니 前記 박사께서 였다. "귀앞은데도 침치료로 됩니까 내가 우연히 바른편 귀속이 몹시 앞아서 대학병원 이비인후과에 가서 진찰을 받어 보았더니 귀속은 아무러치도 않다고 치료도 않해주어서 그냥 돌아왔는데 귀는 계속 앞어 잠을 잘 수도 없고 먹을 수도 없읍니다. 그래서 그 다음날 다시 가봤으나 역시 귀는 아무러치도 않다구요 삼일째 되는 날은 다른 이비인후과 병원에 가봤드니 거기서도 꼭 같은 말입니다."라는 것이다.

 

  이미 그분의 체질은 아는 바이며 그러한 병이 날수 있다는 짐작이 감으로 병원으로 오시도록 하였더니 즉시로 내외분이 오셨다. 별달리 진찰할 것도 없이 大腸熱로 이틀이 앞은 것임을 알고 양곡, 곤륜, 양계를 隨하고 통곡, 이간, 상양, 규음을 迎針한 후에 어떠냐고 물었더니 깜짝 놀라면서 "글쎄 기분인지 앞으지 않어요"하고 침대에서 내려와 상당한 시간을 경과하여도 다시 앞어오지 않음으로, 기분이 아니고 나아서 그런 것임을 알고 돌아갔다.

 

  그후 뵈올 일이 있어 만났드니 귀가 완치되였다고 함으로 그대로 한번 더 치료하여 드렸을 뿐이다.

 

제3례
  지난 8월3일 한전 모과장이 그의 딸(여대생)을 데리고 몇사람과 함께 내원하여 진찰을 요청하였다. 보니 학생의 左便다리 三里下 胃經과 膽經의 경계선쯤에 살색과 구분되는 진한 잿빛깔로 상당히 두드러진 부분이 있다. 들으니 약5년전부터 생겨 점점 커지더니 나중에는 색갈도 그렇게 검게 변하고 또 앞어서 견딜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종합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은 바에 시급히 입원수속을 하라고 하므로 이유를 물으니 병이 암인데 입원하여 조직검사를 하여야 된다고하여 온 가족이 당황하여 어찌할줄 모르고 있을때 마침 한 친구가 와서 입원수속전에 한군데 더 가보자는 권고에 끌려왔다는 것이다.

 

  그래 나는 진단기간을 삼일만 줄수 없느냐고 물었더니 암으로 진단이 났는데 무슨 진단기간이 필요하며, 다만 치료의 가능여부만 판단되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 그래서 나는 물론 암이 아니라는 것이 아니라 그 病根이 어데 있는가를 찾아야 치료의 가능여부가 판단될 것이 아니냐고 했드니 그때야 긍정하여, 나는 그 체질(少陰人으로)과 증이 파악되는 대로 施鍼하여 보냈다.

 

  학생은 다음날 와서 아무 반응을 모르겠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전일의 진단이 맞는것 같아서 동일한 치료를 거듭하였는데 환자는 제3일에도 효과를 보지 못하였을 뿐만아니라 더 불편을 느낀다고 하므로 그때야 오진임을 알고 다시 세밀한 재검을 한 결과 太陽人의 2證(필자가 구분하는 체질병증)으로 확진되여 음곡, 음릉천, 곡천을 隨하고 경거, 중봉을 迎하고 다시 대돈, 소상을 隨하였드니 침도중에 상반신이 상쾌함을 느낄 뿐만 아니라 침이 끝나는 즉시로 환부의 통증이 소실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날밤은 오랫만에 처음으로 숙면을 하였고 다음 아침에도 경쾌를 느꼈다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 치료를 계속하는중 전혀 부작용없이 호전하여 2주일후에는 색깔도 거의 肉色으로 되돌아오고 환부도 많이 줄어 드렀다. 그런데 사실은 病根이 없어 지드라도 두드러진 혹은 더 번지지 않을뿐 그대로 남지 않을가 생각하였든 것이 의외에도 줄어들어 아주 없어질 희망을 보여 주었다. 2주일후부터는 격일해서 치료하다가 생각나는 대로 둘리라고 하고 있는데 환부는 거의 표가 없고 다만 만저서 알고 작은 壓麥 한알 정도의 망아리가 남아있을 뿐이다.

 

제4례
  딸의 병이 낫는 것을 본 전기 과장은 8월26일 자기의 오랜 泄瀉를 고쳐달라고 하였다. 그런데 보니 그가 바로 太陽人이어서 그 딸이 아버지를 닮은 것이었다. 證을 파악하여 양곡, 양계를 隨하고 통곡, 이간, 상양, 규음을 迎하여 5회에 완치되였다.

 

  제5례
  9월7일에는 前과장이 그의 부인을 데리고 왔다. 부인께서는 처음에 딸을 한방으로 데리고 가는 것을 반대하였으나 그후 신기하게 나았고 또 주인도 그 오랜 설사가 낫은 것을 보고 자기의 십여년되는 頭痛도 치료를 받어보고 싶어서 왔다는 것이다.

 

  부인은 太陽人(태음인의 誤記 ?)이며 證은 1證이였다. 그 동안 가진 방법으로 치료를 해 보았으나 효과를 얻지 못하고 지금은 체념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낫습니다"라는 나의 말이 믿어졌는지 기뻐하였다. 證에 따라 경거, 중봉을 隨하고 소부, 행간, 어제를 迎하였드니 다음날 와서 많은 효과가 있다 하므로 같은 鍼方과 함께 熱多寒少湯 5첩을 주었드니 그것으로 두통은 거의 머졌다. 그러나 病原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좀더 다녀야 된다고 하였드니 그후에도 시간이 나는데로 간간히 나오고 있다.

 

  이상 다섯개의 治驗例는 두 가족의 경우이므로 어느 것이나 빼어버릴 수 없어서 다 기록하였으나 지면관계로 다만 환자의 主診과 法方만을 간단히 썼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체질적인 病理이다. 다시 말하면 여기 또 다른 다섯사람이 前記五人과 꼭 같은 主診을 가지고 왔다고 할지라도 그 체질과 證(Syndrome)이 같지 않는 한 그 치료방법은 전연 달러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前記 제1치험례의 腎臟炎 환자의 主診은 少陽人의 1證의 경우이지만 그것을 少陰人의 1證에서도 발견할 수 있으며 후자의 경우에서는 제1례에서와 달리 태백, 태계를 隨하고 대돈, 용천, 은백을 迎하여서 그 병이 치료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病名과 症(Symptom)이 같다 할지라도 양자간의 체질 병리가 다르고 또한 證(Syndrome)도 다르기 때문이다.

 

  전자는 그 증에 있어서 熱은 裡熱이며 右側反應 즉 病反應은 대부분 우측에 나타나고 별로 땀이 없다. 그러나 후자 소음인의 경우에는 熱은 表熱이며 左側反應과 自汗이 난다. 전자의 병리는 胃熱이 盛하여 極하면 먼저 방광이 억제를 받아 기능이 저하되고 따라서 신장도 기능 장해를 받아 마침내 신장염이라는 병명으로 불리우게 되나 제1례의 병이 과거 여러가지 치료방법으로도 잘 치료되지 않었던 것은 직접으로 신장만을 상대하고 그 원인되는 胃熱을 치료하지 않었기 때문인 것이다.

 

  제1치험례에서 기록한 나의 治方은 이러한 원리하에서 여러 鍼方중 가장 효과가 많고 부작용이 없는 것만을 오랜 시간과 많은 치험으로 精選 처방한 것이다. 그러나 후자 少陰人 신장염의 병리는 직접 신장자체의 병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 기관의 기능이 지나치게 왕성하면 마치 모-타가 너무 세게 돌아가다가 지나칠때 自熱에 타서 망가저 버리듯이 소음인의 신장은 본래 그 기능이 旺한데 그것이 어떠한 동기에 의하여 더욱 넘처 지나치게 되면 自己熱에 자체의 기능이 망가지게 되는 것이며 연관적으로 脾臟(췌장)도 또한 본래의 기능이하로 약화되여 하나의 신장염이라는 형태의 병증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 경우 신장의 기능이 저하되였다고 해서 그것을 補해서는 안된다. 다시말하면 그 신장이 약화된 것은 모든 장기가 공평하게 받어야할 보급을 신장이 독점하였던 관계로 마침내는 타버린 것이며 타서 기능이 약화된 현재도 계속해서 보급은 독점적으로 받고 있는 것임으로 그 보급로를 차단하여 신장으로 가는 보급을 주려주지 않고는 홍수에 빠진 신장을 구해낼 수 없는 것이다. 前記 少陰人治方이 바로 그것이다.

 

<1963년 10월23일 기고>
서울 城東區 新堂洞 256-8 大源漢醫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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